작성자 손주선 화일  
작성일 2024-09-03 조회 817
[구원의 기쁨] 포로된 자의 자유 [구원자/속량]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누가복음 4:18)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이사야 61:1)

구원(save, 라틴어의 'salus', 헬라어의 '소테리아')은 어원적으로 '무엇으로부터 건져내어 지킨 온전함, 건강함'이란 의미를 갖는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이사야 12:2)

한편, 구원자(Savior)는 '애굽이나 바벨론의 압박에서 구출한 자' 또는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분'을 의미한다.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줄 알리라."(이사야 49:26)

이 말의 히브리어는 근족으로서 기업을 무를 자와 관련되며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가계(家系)의 보호자로 묘사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아버지와 남편으로 이스라엘과 관계하신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이사야 64:8)

성경에서의 구원은 ‘구속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파다’(ransom)와 ‘가알’(redeem ; '구속하다')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변형되어 하나님의 구원 활동과 관련하여 사용이 되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설명하는 ‘파다’는 사람에게 사용되었던 경우처럼, 적합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 대적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 속량(贖良, paid for freed)은 헬라어의 '엑세고라센', 히브리어의 '파다'(='속전을 치루다', '청산하다'의 뜻)로서, 몸값을 받고 석방함을 가리킨다.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부요하게 되고 그 곁에 사는 너희 동족은 빈한하게 됨으로 너희 중에 우거하는 그 이방인에게나 그 족속에게 몸이 팔렸으면 팔린 후에 그를 속량할 수 있나니 그 형제 중 하나가 속하거나 삼촌이나 사촌이 속하거나 그 근족 중 누구든지 속할 것이요 그가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속하되 자기 몸이 팔린 해로부터 희년까지를 그 산 자와 계산하여 그 년수를 따라서 그 몸의 값을 정할 때에 그 사람을 섬긴 날을 그 사람에게 고용된 날로 여길 것이라."(레위기 25:47-50)

특히 신명기에서의 ‘파다’는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신명기 9:26)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신명기 15:15)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신명기 2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신명기 24:18)

이러한 ‘파다’의 사용은 후에 선지자들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 개념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이사야 1:27)

이처럼 구원은 원래 신적인 존재의 힘이나 자신의 정진과 노력으로 삶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모든 종교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을 실현 시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신의 뜻에 합치 되는지를 깨닫게 하는 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세의 삶에서 비롯되는 질병이나 재앙, 여러 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는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죽음이나 인간의 존재, 그리고 죽음 뒤에 맞게 될 세계에 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구원을 바란다.

이에 대한 바램은 그것을 얻으려는 자세에서 절대자나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는 '타력적 구원형'과 자신의 힘으로 얻으려는 '자력적 구원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자가 초월적 존재에 자신을 모두 바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후자는 스스로가 초월적 존재와 합일되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죄(罪)를 인간의 유한성의 의미로 해석하여,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본다. 결국 신의 도움, 즉 신(God)의 은총이 없이는 구원될 수 없으며, 구체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로마서 10장 9절)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사도행전 16장 30-31절)

초대교회 감독으로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로마인들의 편지"의 저자로 알려진 '로마의 글레멘드'(Clement of Rome)는 구원관에 대해 "우리로 의로움을 행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마지막때까지 우리가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기록한 이 서신은 신약성경 이외에 남아 있는 기독교 최초의 문서들 중 하나로 로마인들의 환경과 사상을 잘 보여준다. 이 서신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평화, 조화, 질서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서신의 저자가 당시의 그레꼬-로마적 상황에 익숙한 사람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96년경 고린도 교회는 바울(Paul, ? - 67) 당시 처럼 또 한번의 싸움이 일어났다. 회중의 한 분파가 교회의 장로를 해임하였고, 교회는 분열의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이 서신의 저자는 당시 무너진 교회 질서를 추스리고 평화를 촉구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하여, 초대교회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드'(Clement of Alexandria)는 "평생 최고의 선을 행한 사람이 마지막에 악으로 곤두박질 친다면 과거 그가 받은 모든 핍박이 그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리니, 그가 극(드라마)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역할(구원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노라."라고 말했다.

또한 교부 터툴리안(Turtullian, 160년 경-222년 경)은 "어떤 이들이 하나님께서 그가 주기로 약속하신 것을 무가치한 자에게까지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노예의 신세로 바꿔 놓아 많은 이가 은혜를 떠나지 않았는가? 이 선물을 빼앗긴 자들이 많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파를 대표했던 기독교의 교부 오리게네스(Ὀριγενες 또는 Origen, 185년 경 - 254년 경)는 "사람이 후천적으로 얻은 의로움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가 의로움을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라고 했으며,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는 "주님께 더이상 순종하지 않고 그분의 상속권을 빼앗긴 자는 더 이상 그의 자녀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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