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갑오년(甲午年) 정월 초 하루.
미수(米壽)를 4년 앞둔 노모(老母)를 뵙기 위해서 딸 자동차로 아내와 함께 인천에 있는 동생 집으로 향했다. 족히 2시간이나 걸렸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더 걸린 셈이다.
노모(老母)께선 아직도 고향(인천 강화 주문도)에서 홀로 사신다. 그곳은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분들이 여럿이 있어 말 벗도 되니 삭막(索漠) 하기만 하고 적응(適應)이 쉽지 않은 도시생활이 맞으실리 없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점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해마다 명절 때만 되면 노모(老母)는 자식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주시려고 뭍으로 나오신다. 모정(母情)이 그런가 보다.
올해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희수(喜壽)를 맞는 숙부(叔父)를 보기 위해서다. 노모(老母)와 숙부(叔父)의 관계는 단순한 형수(兄嫂)와 시동생의 관계가 아니다. 해방 이후 그토록 가난했던 시절, 어려운 가계(家計)를 함께 이끌었던 협업자요 동반자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선친(先親)은 23세의 나이에 전쟁터로, 조부(祖父)는 영세한 새우잡이 어부로 허구한 날 바다로. 조모(祖母) 역시 폐결핵(肺結核)을 앓고 있어서 가정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때문에 가난에 찌들어진 가계(家計)는 갓 스물이 넘은 어머니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국민학생이었던 숙부(叔父)가 엉겹결에 이어 받아 4대(代)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한 숙부(叔父)가 10년 전 뇌출혈(腦出血)로 쓸어진 이후 최근에는 다리가 끌리고 거동 또한 예전 같지 않으며, 말도 이전보다 더 어눌해 졌다. 마치 선친(先親)께서 말년(末年)에 겪으셨던 치매(癡呆) 증세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선친(先親)은 57세에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오른 쪽 다리를 끄시고 점차 말이 어눌해 지며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생각과 행동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몹시 힘들어하셨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고 전형적인 치매(癡呆) 현상으로 결국 몸져 눕게 되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 생활을 했다. 종종 대변을 벽에 발라 집안에 악취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약 2년 간을 자리보전으로 투병하시다가 70세의 생을 마감하셨다.
때문에 지금도 노모(老母)를 생각만 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그러나 마음 뿐.
늦은 오후. 동생 집에 모여 담소(談笑)를 마친 우리는 노모(老母)를 모시고 인천 송도에 있는 숙부(叔父)님 댁(宅)으로 갔다. 노모(老母)는 숙부(叔父)님을 보시자 마자 숙부(叔父)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우신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어서 일까, 아니면 사람이 그리웠던 탓일까. 아마도 16년 전 선친(先親)을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형과 아우가 동일한 질병을 동일하게 겪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정월 초하루의 해가 뉘엿뉘엿해지면서 모친은 헤어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 하는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헤어질 때가 되자 잠시 멈추었던 노모(老母)의 눈물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어 밖으로 나오시어 통곡(痛哭) 하신다.
노모(老母)는 점점 초췌(憔悴)해 가는 숙부(叔父)를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 생계를 위해 함께 했던 숙부(叔父)가 지금 거동이 불편해 하고 말도 어눌해 자신의 생각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니 노모(老母)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어느새 육십을 바라보고 있는 여동생도 눈물을 훔친다. 그 누가 말했던가. '눈물은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은총의 도구인 동시에 말없는 언어요, 소리 없는 표현'이라고.
'눈물을 흘릴 때 우리의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고 그 사랑은 선한 열매를 맺으며, 평화를 깃들게 한다. 그래서 슬플 때나 힘들 때, 심지어는 기쁠 때도 울음이 필요한가 보다. '울고 또 울어 눈물을 쏟아낼 때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한이 풀릴 때 한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어느 식자(識者)의 글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0년 9월 22일.
우리는 숙부(叔父)를 아주 먼 곳으로 배웅했다. 눈물로 지샌 3년간의 요양원 생활을 끝내고 82년 간의 생애를 마무리 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6년 전에 흘렸던 노모(老母)의 눈물은 시간이 흘러 자식에게로 이어졌다. 그래서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정한 이치'라는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숙부(叔父)의 임종 소식에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노모(老母)의 눈물은 지나온 구십 평생의 한(恨)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바로 그러한 눈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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