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관리 공지사항
작성자 손주선 화일  
작성일 2021-02-20 조회 123
[쓸쓸함] 고독(孤獨)이라는 병(病) [외로움]
중국 당대(唐代) '유하동집(柳河東集)' 45권을 보면 당(唐, 618 - 907) 나라 때 문인이자 유학자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던 유종원(柳宗元, 773-819)은 그의 오언고시(五言古詩) '남간중제(南澗中題)'에서 고독을 "孤生易爲感(고생역위감) 失路少所宜(실노소소의)"로 표현하고 있다.

"고독한 삶이라 쉽게 감상에 빠지고, 길을 잃은지라 마땅히 여기는 일도 적다."는 뜻이다. 이는 귀양지 남간(南澗)에서 쓸쓸한 생활을 탄식하며 지은 시의 일부이다. 이처럼 고립된 생활은 감상에 젖기 쉽고, 길을 잘못 들면 만사가 꼬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영국의 유명한 여류 찬송가 작가 프랜시스 해버갈(Frances R. Havergall, 1836-1879)이 1873년에 작사하고, 이태리 사람 살바토레 페레티(Salvatore Ferretti, 1817-1874)가 작곡한 찬송가 292장(통합 415장) '주 없이 살 수 없네'(CAN'T LIVE A DAY)의 4절에는 고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주 없이 살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사나운 풍랑 일때 날 지켜 주시고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되시네"

고독(孤獨, solitude)은 부모 없는 어린아이나 자식 없는 늙은이처럼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서 "쓸쓸함(loneliness)"은 자신 스스로가 강하지 못해 주변에 다른이가 없으면 늘 마음에 불안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우리가 홀로 고립 상태에 있음을 잊게 했던 사람들이 이별 또는 죽음으로 우리를 떠나간 후에 경험하게 되며 사랑받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거절될 때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고독(solitude)은 노력여하에 따라 언제든 홀로 설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시절은 고독(孤獨)한 삶 그 자체였다.

가난으로 인해 남의 농사일을 도와야만 생계 유지가 가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텅 빈 집은 나홀로 지켜야 했다. 또래의 가정들은 형제자매가 있어 말 동무가 있었지만 나는 늘 혼자였다. 하지만 그 때 경험한 고독(solitude)은 지금의 황혼(黃昏)에서 느끼는 고독(孤獨)으로부터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쓸쓸함(loneliness)'과 '외로움(solitude)'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고독(孤獨)에 이르는 병(病)'은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를 얻게도 한다. 거기에 고독(孤獨)에 이른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하나님 안에서야 말로 우리는 우리가 잃었던 자신을 되찾아 고독(孤獨)으로부터의 자유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곳에서 만이 우리는 진정한 타인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래의 자기모습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경(詩經)은 내가 경험했던 '외로움(solitude)'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홀로 서 있는 팥배나무 / 그 잎이 무성(茂盛)하네 / 홀로 외로운 길 / 세상에 남이야 없으련만 / 어찌 동기간(同氣間) 같을까 / 아, 길가는 이들이여 / 조금만 힘을 보태어 / 형제(兄弟) 없는 이에게 / 도움 줄 수는 없으신가요."

"有杕之杜(유체지두) 其葉湑湑(기엽서서) 獨行踽踽(독행우우) 豈無他人(기무타인) 不如我同父(불여아동부) 嗟行之人(차행지인) 胡不比焉(호불비언) 人無兄弟(인무형제) 胡不佽焉(호불차언)" [체두(杕杜) : 시경(詩經) 국풍(國風) 당풍(唐風)]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1849년에 간행된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여기서 절망이란 자기상실 즉, 신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절망의식의 심화는 참(眞) 자기에 이르는 길이라 하였다.

사도 바울(Paul, B.C.2 - A.D.67)도 말년에 매우 '쓸쓸한(loneliness)'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포함한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고, 데마도 그를 내버려두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렸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게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디모데후서 1:15)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디모데후서 4:9~11)

이에 바울(Paul)은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로마로 와서 자기와 함께 있어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워하여 두 번씩이나 속히 오라고 요청하였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디모데후서 4:21)

평균수명이 긴 나라가 선진국이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장수(長壽)는 인간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반면 고령에 따르는 질병, 빈곤, 고독, 무직업 등에 대응하는 사회경제적 대책이 고령화사회의 당면 과제이다.

일본에서는 현재 가족이나 당국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독신 가구와 가난하고 병든 노인이 늘어나면서 숨진 지 한참 지난 뒤 발견되는 이른바 '고독사' 도 계속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도쿄의 경우 하루 평균 '고독사'는 10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의 대부분은 자녀가 있지만, 노인 부양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면서 혼자 살거나 노부부끼리 생활하는 가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가정의 붕괴다. 이러한 가정의 붕괴는 곧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조직한 사회이고, 최초로 복을 내려 주신 곳이기 때문이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手中)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箭筒)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편 127 : 4-5)

이는 가정이야말로 기쁨과 평안의 옹달샘이요, 안식과 건강의 공급처가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정이 불안하게 되면 개인의 삶이 흔들림은 물론, 국가 전체에도 어려움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제도를 만드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평안을 주시고, 세상의 염려와 고난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하시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고독(孤獨)이라는 병(病)"의 치유를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가정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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