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손주선 화일  
작성일 2023-05-29 조회 248
[삼위일체] 프로테스탄트 [트리니티/경교/야소교/그리스도교/기독교/내 주는 강한 성]
기독교(Christianity)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신앙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종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맺은 신으로서, 그 자신이 3위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곧 성부(聖父)·성자(聖子)·성령(聖靈)의 3위로서, 이 셋은 각기 독립적인 위격(位格)이면서도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3위로써 하나의 하나님을 이루는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교리이다.

하지만 성서에는 하나님을 '삼위일체'(三位一體,)로 부른적이 없다. 단지 삼위일체적 형식, 즉 성부는 창조주(Creator), 성자는 속죄주(Redeemer), 성령은 성화의 주(Sanctifier)로 기능이 나누어질 뿐이다. 그리고 성부(聖父)는 창조주로서 창조의 주인이시며, 인간과 역사를 섭리하신다.

성자(聖子)는 태어날 때부터 성부와 동일 본질이면서 인간과 동일본질이시며, 속죄하는 하나님으로 우리를 속죄하신다. 성령(聖靈)은 우리로 하여금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게 하시며, 우리의 예배와 신앙의 대상이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성화시킨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린도전서 12:4-6)

삼위일체론(Doctrine of the Trinity)은 325년에 세계 최초교회회의로 개최된 '니케아회의'(Nicea)에서 공식적으로 선언되었다.

니케아신조에서는 '성령이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으나, 그 후 서방교회에서는 필리오케(filioque) 즉 '그리고 아들로부터'라는 개념을 임의로 삽입하여, '성령이 성부로부터, 그리고 성자로부터 나온다'라는 독자적인 입장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이것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1054년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분열하는 계기가 되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교리에 있어서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형상으로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함께 참여하여,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낮추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구현시키셨으며, 그의 사랑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의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을 약속받았다.

이것이 기독교 교의(敎義)의 핵심이며, 본질을 이루는 원리이다. 이와 같은 교의를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啓示)한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 또는 자연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나, 자연계시에 의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부분적인 것이며 불완전한 것으로서, 다만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올바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의한 계시종교(啓示宗敎)라는 특수성을 가지지만, 그 계시는 인류역사 속에서 구현되기 때문에 또한 역사적인 종교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인류 역사와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자존(自存)하는 신으로서, 그의 본질은 한마디로 말하여 '사랑(agape)'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와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로서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써 세상의 창조와 구원 사업을 이룩하는데, 그 사업은 바로 인류의 역사 속에 구현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와 구원 사업을 펼치기 위하여 역사 속의 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계약을 맺었는데, 그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계약의 근거와 핵심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계약을 '사랑의 계약'이라고 한다. 본질이 선(善)이요 사랑인 하나님은 인간과의 계약에 절대적으로 충실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섬겨 계약을 파기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사랑의 계약을 지켰다. 하나님은 그 계약의 실현인 인간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사람이 되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것을 "말씀(Logos)이 사람이 되셨다"고 표현하였는데, 이때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이 이 세상에 구현되는 원리로서, 이의 육화(肉化)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참고1] 기독교라는 명칭은 중국어 한자성경에서 유래되었다. 7세기경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당나라에 전해진 기독교는 하나님을 상제(上帝), 천(天), 신(神) 등으로, 그리스도를 기독(基督)으로, 예수를 야소(耶蘇)로 표기하였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은 이러한 한자문화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으며, 한국 기독교 초창기에는 기독교를 야소교(耶蘇敎)라고도 불렀다.

그리스도(Christ)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뜻한다. 즉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크리스투스가 되었고, 그 뜻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구세주(救世主)가 된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종교가 그리스도교이며 그 말이 한자의 영향으로 기독교(基督敎)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기독교는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톨릭 교회가 천주교(天主敎)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되었다. 천주교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하나님을 천주(天主)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천(天), 신(神), 상제(上帝) 등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교황 클레멘트 11세의 칙령에 의해 1704년부터 천주(天主)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대한성서공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천주는 유가(儒家)의 ‘상제(上帝)’ 또는 전통적 신개념인 ‘하느님’과 같은 개념으로 ‘온갖 사물 가운데 오직 천(天)이 크고, 온갖 명칭 가운데 오직 주(主)가 존귀하니 지대지존(至大至尊)의 뜻을 취하여 천주라 하였다’고 프랑스 출신 로베르(Paul Robert Achille, 1853∼1922 : 한국명 김보록) 신부의 글에 기록된 바 있다.

이러한 중국 한자문화의 영향으로 한국 땅에 들어온 가톨릭교회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천주교’가 된 것이다. 따라서 ‘천주’라는 이름은 신의 이름인 동시에 교단의 이름이 되었는데,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은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이다.

한편, 개신교(改新敎)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를 말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天主敎)를 구교(舊敎)로, 개신교회를 신교(新敎)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가톨릭(Catholic Church)이나 정교회(Orthodox Church), 개신교(Protestant Church) 등 모두는 그리스도교(基督敎·Christianity)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2]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활동하던 당시(1529년경) 독일에 군림하던 황제 카를 5세(Karl V, 1500.2.24~1558.9.21)가 소집한 제국회의 결과가 친가톨릭교회 정책으로 선회하자 루터 지지파 제후들이 일치단결해서 황제에게 거세게 항의했는데, 이때부터 루터 지지파들을 가리켜 ‘항의하는 자’들로 지칭되었고, 그런 뜻으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의 용어가 사용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루터 지지파들 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대비된 개신교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당시 독일로 황제로 등극한 카를 5세는 소년기를 막 벗어난 16세 때 스페인의 왕이 되었고 약관 19세에 신성로마제국 즉,독일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독일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으로 거대한 역사의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때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혁신과 개혁의 시대를 이끌고 나갈 만한 역사적 통찰력이나 정치적 지도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루터(Luther) 지지파와 가톨릭교회 지지파 사이에 끼여 우왕좌왕하다가 황제의 자리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퇴위한 후 수도원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다가 생애를 마쳤다.

카를 5세(Karl V, 1500.2.24~1558.9.21)는 독일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곧 보름스에서 제국회의를 소집하고 당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루터를 범죄자로 규정,법적 보호를 박탈하는 칙령을 선포했다(1521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일내 루터의 지지 세력은 늘어만 갔고 독일의 많은 제후들들은 강력한 루터의 지지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루터(Luther) 지지파들은 단순히 항의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1531년 독일 중부지역의 도시 슈말칼덴(Schmalkalden)에 모여 동맹을 결성했다. 결국 황제의 친가톨릭 정책은 루터 지지파들을 더욱 결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에 루터 지지파들로 구성된 ‘슈말칼텐 동맹’은 독일내에서 황제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과 황제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대결 상황이 빚어졌다. 마침내 황제도 이들의 단합된 힘에 손을 들고 말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황제와 루터 지지파 사이에 대화합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개신교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Peace of Augsburg)이다.

이 화의의 핵심은 “제후의 영지 내에서는 제후의 종교를 따른다”(cuius regio,eius religio)는 것이다. 이때부터 루터를 지지하는 제후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루터파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교회 예배의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 가톨릭교회 예배의식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는 엄격하게 구분되어 모든 예배는 성직자 중심이었고 평신도는 방관자에 불과했다. 모든 크리스천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었던 루터는 모든 예배자가 다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루터는 찬송가를 직접 작곡.작사해서 모두 함께 부르게 했다.

찬송가 585장(구 384장) '내 주는 강한 성(城)이요'(A Mighty Fortress Is Our God)은 종교개혁가인 독일사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29년에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가사는 시편(詩篇)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 46:1)

"내 주는 강한 城이요. 방패와 병기(兵器) 되시니 /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天下)에 누가 당하랴."

이 찬송은 17세기 종교전쟁 때 신교(新敎) 군대 편에서 싸웠던 스웨덴 軍이 이 노래를 軍歌처럼 불렀다. 그래서 '개혁의 전송가(戰頌歌 : Battle Hymn of the Reformation)'란 별칭을 갖고 있다.

이 찬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년 2월 3일 ~ 1847년 11월 4일), 빌헤름 리차드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같은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이 노래의 곡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특히, 리처드 바그너(Richard Wagner)는 1871년 보불전쟁[普佛戰爭 :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킨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인 프랑스를 제거하여 독일 통일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목적으로 일으킨 프랑스와 독일간의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한 빌헤름 1세(Wilhelm I, 1797년 3월 22일 ~ 1888년 3월 9일)를 위한 '황제 행진곡'에 루터(Luther)의 곡을 삽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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